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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바람이 머무는 건반*
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.
소리 대신, 바람이 건반 위를 조용히 흘렀다.
들판 너머로 가을빛이 스며들고,
아무 말 없이 손끝으로 시간을 연주했다.
경주 화랑의 언덕.
높은 건 하나 없이,
마음이 가장 멀리까지 달릴 수 있는 풍경이었다.
그날의 나는
셔터 대신 귀를 열고 있었다.
들리지 않는 음악이 들릴 때가 있다면,
아마 이런 순간이지 않을까.
라이카 M9-P의 뷰파인더 너머로
햇살과 고요, 그리고 그리움 같은 것이
피아노 건반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.
사진 한 장에 담기엔 아까운 순간이었지만,
그래도 담고 싶었다.
바람이 잠시 머물다 간 건반 위에서,
마음이 아주 천천히 울리고 있었다.
"소리가 없던 그 연주는, 오히려 더 깊게 남았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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